< 답변 >

　아마 이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가 불생불멸

(不生不滅)일 거요. 부처님의 말씀대로 참으로 생기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없다면 그 가운데는 뭐요? · · · · · · 아무 것도 없는 거요. 없다는 것

조차 없소. 이 세상 삼라만상 그 어떤 것도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있는 것

은 없소. 그런데 연생(緣生)은 무생(無生)이요, 무생이니 당연히 무멸(無滅)

인 거요. 결국 이 세상이 지금 눈에 보이는 이대로인 채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법성의 깊은 본 성품으로 꿰뚫어보면 전

혀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 거요.

　어린 아이들이 넓은 바닷가 모래밭에 옹기종기 모여 각기 집도 짓고 길도

만들고 다리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온 정신이 팔려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오. 재미있게 놀다가도 무슨 심술이 나면 또 밀고 당기고 서로 싸

우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러다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다들 집으로 돌아가

고 나면 모래밭에 남겨진 모든 이런저런 형상들도 전부 부슬부슬 부서지고

흔적만 남을 거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왁자하게 놀고

싸우고 그러던 모래밭이 지금은 어떻소? · · · · · · 고요한 적막만이 맴돌 거

요. 아이들이 정신없이 놀 때나 해가 저물어 다 떠나버리고 났을 때나 모래밭

은 늘 그대로인 거요. 조금도 늘거나 준 일도 없이 항상 그대로요.

　지금 이 세상이 그 모래밭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아이들

이 만든 집이니 다리니 사람이니 기타 여러 가지 형상들이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영락없이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겠소? 그러니 다른 아이가 자기

집을 망가뜨렸다고 다투기도 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소? 그렇듯이 여러분이 인

연 따라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그 겉모습만 좇는다면 영원히 범부신

세를 면하기는 글른 거요. 그러나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 그 넓

은 모래벌 전체를 항상 놓치지 않는다면 그 사람 마음을 흔들 것은 이 세상 아

무것도 없는 거요. 그래서 경(經)에 이르기도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닌 줄만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고 했던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