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범부는 한 소식하면 그게 기뻐서 정신 못 차리지만, 제대로 된 수행자는 보고

듣고 해서 뭔가 아는 바가 생기면 몹시 화를 낸다는 얘기가 있소. 뭔가 헛것에

또 코를 꿰여 놀아났다는 소리요. 그래서 취모검(吹毛劍) 얘기가 나오는 거요.

그동안에 보고 듣고 해서 뭔가 알음알이가 고개를 추켜들면 나타나기 무섭게 그

취모검으로 잘라버렸다는 거요. 마음공부 하는 사람에겐 그게 무엇이 됐건 보이

는 게 있고 들리는 게 있어서 또렷또렷한 알음알이가 생기면 그것은 전부 해골

바가지 앞의 소식임을 잊지 말아야 하오. 그게 전부 내 마음의 거울에 비친 그림

자이기 때문이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연에 기대지 않고 나는 것은 없소. 하지만 인연 따라

나는 것은 났다고 할 수가 없소. 겉으로는 난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 난 것은 아

무것도 없는 거요. 그렇게 무생(無生)이면 무상(無相)이요, 무성(無性)이요, 무

작(無作)이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성품이 없기 때문에(無性) 삼라만상이 온통

한 성품(一性)이라 하는 거요. 바다의 천파만파가 제 각각 모습은 전부 달라도

몽땅 한 맛이듯이 말이오.

　이 세상 삼라만상이 성품이 없기 때문에 한 성품이고, 한 성품이기 때문에 전

부 평등한 거요. 그렇게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볼 수 있는 등관(等觀)에 든다면, 누

가 무엇을 보고 한 소식을 했다 할 것이며, 한 소식을 했다고 좋아하는 놈은 또

누구겠소? 전부 평등해서 너와 내가 없고 온통 한 몸인데. 거기엔 평등하니 온통

하나니 하는 따위의 말도 필요 없는 거요. · · · · · · 공부를 지어가다 보면 왜 환

희심이 생기는 때가 없겠소? 하지만 그게 좋다고 거기에 살림 차리고 들어앉는

것은 수행자가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오. 계속 정진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