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그 내용이 무엇이 됐건 ‘왜~ ?’로 시작하는 질문은 그 내용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소. ‘왜’라는 것은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 아니오? 일어났는

데 왜 일어났는가를 알고 싶다는 거요. 티끌 하나 움직인 조짐조차 없어서 무

시(無始) 이래로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그렇게 얘길 해도, 기어코 일

이 일어났으니 그걸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요. 그러니 거기에 무슨 대답인들

답이 될 수가 있겠소?

　인과 관계가 전부 다 비었소. 원인이 결과를 내는 게 아니고, 결과가 원인을

갚는 것도 아니오. 일체가 무생이오. 무기무멸(無起無滅)이오. 그럼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보고, 무슨 일이 사라졌다고 보면 그게 바로 무명이오.

　마음 밝히라 그러고 마음공부 하라 소리를 많이 들을 거요. 그런데 아직도

의식을 제 마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소. 의식이란 헤아리고 더듬고 찾아서

이렇다고 알고 저렇다고 아는 그게 의식이오. 그렇게 알기도 하고 또는 모르

기도 하는 지각작용, 알음알이는 여러분 마음이 아니오. 맑은 거울이 그저 온

갖 사물을 다 비추어내듯 본래 마음은 작용이 없소. 그 본래 마음은 있는 그대

로 전체를 통째로 환히 비추지만, 의식은 전체를 통째로 비출 수가 없소. 범부

의 의식 작용이 미숙해서 그런 게 아니고 의식 자체가 구조적으로 그렇소. 가령

이것을 죽비라고 알아보는 게 의식이오. 그런데 그렇게 알아보려면 전체로부터

이것만을 떼어내서 그것을 인식해야 죽비라고 알아볼 수가 있는 거요. 그게 의

식이오. 이렇다고 알고 저렇다고 알고, 있다고 알고 없다고 아는 그런 모든 알음

알이가 전부 의식이라 소리요. 옛 선지식들이 “범부나 외도로 하여금 알음알이가

없게 하라” 고 했듯이 그 알음알이, 의식을 굴리지 말라 이 얘기요. 이 말을 듣고

이승(二乘)들은 알음알이를 끊으려 하오. 하지만 보살은 알음알이가 무생인 줄

알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있건 알음알이가 없건 그 양변에서 놓여나 항상 자유롭

소. 알음알이, 의식 그 자체가 빈 것이기 때문이오. 빈 것에 대해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