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그렇게 욱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마음에 비추어진 그림자를 보고 헛되이

생각이 요동치는 것이지, 마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라는 사실을 익히 들

어 알고 있을 거요. 그렇다고 그 욱하는 생각을 찍어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

느라고 끙끙거리며 또 다른 갈등거리를 만들지 마시오. 살다보면 어떻게 마땅한

일, 마땅치 않은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소? 하지만 그렇게 마땅하거나 마땅치

않은 일들이 생겼을 때에, 평소에 참구가 깊은 사람은 얼른, 그 경계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데 다만 나의 생각만으로 좋고 나쁨이 지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거요. ‘그 자체는 성품이 없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다만 인연

으로 나투어진 것일 뿐인데, 내가 마땅하다고 혹은 마땅치 않다고 짓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훌쩍 허리를 펼 수 있는 계기를 맞는 거요.

공부의 실마리를 거둬 잡은 거라 할 수 있소.

　초기 단계에는 일어나는 생각을 찍어 누를 수 있소. 또 어느 정도 까지는 그래

야만 그 미쳐 날 뛰는 마음을 일단 진정시킬 수 있소. 분별하지 말고, 취사선택

하지 말고, 분심(憤心)내지 말고 등등. 그게 소위 막망상(莫妄想)이오. 하지만 지

금 여러분한테 하는 소리는, 어떤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찍어 누르지도 말고

회피하지도 말고, 생각이 그 상대경계를 따라 그냥 흐르도록 두라는 얘기요. 마

음이 그 생각을 따르게 하되, 조작하지 말라 소리요. “안 돼! 스톱! 어비!” 그러면

서 그 생각을 통제하려들지 마시오. 조작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이 ‘나’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설치고 있다는 증거요.

　그 경계를 좋다고 하건 싫다고 하건, 그것은 환화공신인 이 ‘나’란 놈이 경계를

실체인 줄 알고 그 어간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생겨난, 켜켜로 쌓인 업식(業識)

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 실제로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것, 오로지 마음

만으로 좋고 싫음이 갈려진다는 것, 그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오. 그 생각의 끝을

좇아 마냥 내달으며 먼지 피우지 말고 그렇게 훌쩍 회심하여 조촐히 쭉 가다보면,

온갖 이런 것 온갖 저런 게 전부 빈 말뿐이라는 사실이 철저히 사무쳐지면서, 마침

내 온갖 이런 것 온갖 저런 것이 저절로 쉬게 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