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면 지견만 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이 말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오. 참으로 그렇소. 그 말의 참뜻을 알았거든 말은

기억해 짊어지고 다닐 이유가 전혀 없소. 단적으로 말해서 말이라는 것은

‘말은 본래 빈 것이다’라는 사실을 전해주기 위해 있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런데도 계속 그 말 속에 뭔가 담긴 것이 있어서 묻고 대답하는

어간에 오묘한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그런 게 지금 여러분이 법문을 듣

는 방식이오. 그렇게 알아들은 말을 가지고 평생 망정만 굴려 버릇했기 때

문에 뭔가 보이고 뭔가 들리면 그 보고 듣는 가운데 이름을 짓고 뜻을 지

어서 이러쿵저러쿵 알음알이만 말아내고, 그 각자의 알음알이가 옳은가

그른가만을 서로 견주고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그것은 지금 동쪽으로 가야

할 사람이 터무니없이 서쪽으로 내닫고 있는 격이오. · · · · · · 말은 그냥

소리요. 소리는 다만 울림일 뿐인데 그 소리에 멋대로 의미를 얹고는 그 소

리에 담긴 뜻을 따라 춤을 추고 있는 거요. 그게 속기(俗氣)요.

　성품을 밝히고 나면 타(他), ‘다른 것’이란 있을 수 없소. 장애가 있니 없

니 하는 논의가 애초부터 붙을 여지가 전혀 없는 거요. 아무런 장애가 없는

무애자재(無礙自在)함을 좋아하고 있는 동안은 아직도 이 육신이 ‘나’요. 수

행의 주체인 이놈이 뭔가 가로막고 장애가 있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자유

자재하기를 원하는 거요. 그렇게 자유자재하기를 바라고 있는 동안은 계속

수행의 주체가 ‘나’요. 그럼 영영 근원으로 돌아갈 분수는 없는 거요. 본 성

품은 허공 같아서 자유, 부자유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소. 일찍이 문턱을 넘

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에 묶인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소. 묶였

던 적이 없으니 풀릴 일도 없고, 문턱을 넘지 않아 물들었던 적이 없으니 다

시 깨끗해 질 일도 없는 거요. 도무지 조작할 일이 없소. 바로 그 성품이 도

(道)고 그 성품이 부처요. 모든 말과 뜻은 그 성품으로부터 비롯된 거요.

　행여 이 말을 듣고 ‘알아듣지 않아야 바로 가는 것이구나’ 하는 또 하나의

그릇된 지견을 지으려 하지 마시오. 말을 알아들어도, 알아듣지 못해도 둘

다 깨달음과는 전혀 상관없소. 자신의 천진한 본 성품을 등지고 겉으로 드

러난 말과 뜻이라는 망령된 업식을 좇아 벌써 밖으로 내달았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