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정법을 드러내기(顯正) 위해선 우선 ‘내’가 죽어야 하오. 수천만 년 동안

이 육신을 ‘나’라고 알며 살아온 중생들이 듣기에는, 죽는다는 말이 영 섬뜩

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나’란 놈은 본래 없었던 거요. ‘나’라고 할 ‘나’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죽어야한다는 말도 전혀 헛소리에 불과한 거

요. · · · · · · 있는 것을 없애라 소리가 아니오. 지금 현재 있는 이대로인 채

로, 이것이 없는 거요. 그러니 어서 안목이 밝아지기 전에는 그 말의 진정한

뜻을 알아차릴 수가 없소.

　단적으로 말해서 여러분이 지금 하는 공부는 ‘어느 구석을 찾아봐도 ‘나’라

고 할만한 ‘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요. ‘나’뿐만 아니라 일체만법이

도무지 딱히 이게 이거라고 지칭할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요. ‘만

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사실을 투철히 깨닫는 거요. 그런데 그 ‘나’라는

업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이런 말을 들으면 대번에 어서 빨리 ‘나’ 없는 경

지를 깨닫고자 하는 놈이 벌써 들썩들썩 거리오. 그놈이 바로 ‘나’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자기는 들은 바대로 잘 수행하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범부중생이오. 그가 설사 ‘나’없는 경지를 깨달았다고 칩시다. 누가 깨달았다

는 거요? · · · · · · 계속 ‘나’ 아니오? 그렇게 해선 점점 ‘나’가 강화될 뿐이오.

‘나’없는 경지를 깨달은 ‘나’ · · · · · · 한마디로 넌센스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시오. 지금보다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더 훌륭한 ‘나’, 궁극적으로 깨달아 마친 ‘나’가 되기 위해 행

해지는 모든 행위들, · · · · · · 그런 모든 유위행들이 ‘나’를 더욱더 강화시킬

뿐,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지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렇다고

‘나’를 책망하거나 합리화하려고도 하지 마시오. 그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를 거울이 사물을 비추듯 담담히 비추어 보시오. 조급하지 말고 그저 그렇게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족하오. 참으로 조촐히 삼가며 그렇게만 촘촘히 죽 갈

수 있다면 정법(正法)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음을 알게 될 거요. 이미 거기엔

더 알아야 할 ‘나’, 더 얻어야할 ‘나’, 깨달아야 할 ‘나’는 없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