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찍어 누르지 않겠다고 벌써 작정하고 있다 소리 아니오? · · · · · · 우리는 흔히

작용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작용을 한다고 당연하게 믿고 있소.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을 한다고 믿는다 소리요. 전체가 참된 하나뿐이라고 입만 벌이면 얘

기하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항상 이것과 저것,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이거요. 이 세상에는 이것저것 할 것이 본래 없소. 사람이 억지로 분별함

으로 해서 두 가지로 나뉜 거요. 그러니 “이것과 저것이 같은 소립니까, 다른 소립

니까?”, “이게 옳은 겁니까, 그른 겁니까?” 하고 묻는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소

린지 알아야 하오.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한다’고 말할 때에는, 마치 그 생각에 선행해서 생각하는

사람, 즉 ‘나’가 먼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오. 하지만 여태껏, 이 세상 어디에도

‘나’라고 할 만한 ‘나’가 없다는 사실은 수도 없이 밝혀오지 않았소? ‘나’는 없는 거

요. 그럼 생각하는 사람인 ‘나’가 없는데 어떻게 생각이 제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겠

소? · · · · · ·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만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지,

작용의 주체는 없는 거요. 생각할 때에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소리요. 이 말은 여러

분이 범부의 탈을 벗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갈림길이오. 끝끝내 이 고깃덩어리를

끌고 다니면서 이놈을 ‘나’로 알고, 이놈이 생각하는 주체요, 말하는 주체요, 수행

하는 주체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은 영영 깨닫기는 글른 거요. 능소(能所)의 자취가

다해야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했는데,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수행한다는 식으로, 그렇게 계속 능(能), 소(所)가 소멸이 안 된다면 그 사

람은 당나귀 해가 되어도 가망 없는 거요.

　생각은 물처럼 그저 흐를 뿐이오. 거기엔 아무 문제가 없소. 다만 그 생각이 한

군데에 맺혀서 엉켜버리면 사단이 벌어지는 거요. 그 맺힌 생각이 뭐겠소? · · · · · ·

바로 ‘나’요. 그동안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고 생각이 생각하는 사람을 지어낸 거라 이 소리요. 생각이 ‘나’

란 놈을 지어내는 순간 사단이 벌어졌으니, 그게 바로 온갖 이런 것과 온갖 저런 것,

이 세상 천지삼라만상인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