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그 말은, 지금 생각할 때에 생각하는 주체가 없다 소리요. 그러한 생각을 말아

내는 사람이 없는 거요. 이 말을 깊이 참구하시오. 하는 자도 없고 하게 하는 자도

없소.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주재자(主宰者)가 없소.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다는 뜻이오.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라는 말속에 이 모든 뜻이 포함되어

있는 거요.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런데 그 말을 깊이 참구하지 않

고, 그저 저 밖에서 들려오는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라는 말을 여기 앉은 ‘내’가

듣고,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주재자가 없다’고 이해해서 한 토막 지견

으로만 기억해 짊어지고 다닌다면 거기에 무슨 공덕이 있겠소? 그저 남들한테 그

럴싸한 소리쯤으로 되뇌이고 있는 거요. 깨닫는가 깨닫지 못하는가의 유일한 열쇠

인 이 말의 깊은 뜻을 사무쳐 그 바닥을 꿰뚫어 마칠 생각은 안 하고, 말만 배우고

있는 거요.

　지금 있는 이대로 진리 아님이 없다 소리는 많이 들어봤을 거요. 여러 해 공부를

하며 깨닫기 위해 애쓰고 추구하고 그랬다 소린데, 지금 이대로가 전부 진리라면

무엇을 또 추구할 것이 있겠소? 결국 추구하는 행위도 전부 진리의 나툼인 거요.

그러니 그 머리를 굴려 궁리하고 따지고 천착해서 알아낸 그것이 아무리 대단하고

오묘한 것일지라도 그 내용은 전혀 중요치 않소. 그저 인연으로 말미암아 잠시 생

겨났다 이내 사라지는, 여러분의 깨달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림자나 메아리 같

은 거요. 그저 그 전 과정에 있어서 누가 그리하고 있는가를 잠잠히 살필 줄 아는

마음이라야 성숙한 마음이라 할 수 있소.

　무명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사는 것도 진리요. 저 깊은 산속에 들어가 맑

고 고요한 경지를 추구하는 것도 진리요. 그 마음속에 범성(凡聖)의 자취를 쓸어낸

사람만이 그 모든 모습을 평등하게 볼 수 있고, 그것이 곧 깨달음의 다른 말이오.

자기 자신을 범부로 치부하고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성인의 경지를 향해 헐떡이며

추구하는 동안은 깨달음은 있을 수 없소. 무언가 ‘내’가 닮고 싶고, 도달하고 싶고,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그런 것이 있는 사람은 구도자가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