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그게 전부 초입(初入)에서 하던 소리요. 성품도 모습도 다 보내시오. 이 ‘나’

가 어떻게 성품을 드러낸단 말이오? 그 ‘나’는 성품 밖에 있는 거요, 성품

안에 있는 거요? 여전히 모습놀이 하고 있는 거요.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니니

취하고 버리고 할 일이 애초에 없소. 모습을 모습으로 보기 때문에 취하고 버

리고 하는 일이 있는 것 아니오? ‘나’가 있고 ‘너’가 있고, 나는(生) 일이 있고

사라지는 일이 있고, 가는 일이 있고 오는 일이 있고, 그런 게 전부 모습이오.

그게 전부 빈 거라 소리요. 모습이 있고 이름이 있는 모든 것은 몽땅 다 꿈같

고, 허깨비 같고, 그림자 같다고 얘기하지 않소? 그러니 그러한 모습에 관해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언급할 여지가 전혀 없는 거요. 모습이 본래 없는 것인

데, 어리석은 중생이 그걸 죽어도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 집착을

떼어주기 위해 ‘모습이 없다’고 얘기한 것뿐이오. 그러니 모습이 비었다고 얘

기해도 모습이 실제라고 얘기해도 전부 군소리요. 그렇게 되면 말길이 저절로

끊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소?

　뭔가 알아들은 게 있다면 그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획을 긋는 거요. 허공

에 말뚝 박는 거라고. 모습을 취하니 성품이 숨고, 성품을 취하니 모습이 숨고

주절주절. 성품이 와서 그렇게 얘기합디까?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든 분별, 그

게 아무리 대단하고 오묘한 소리일지라도, 우리가 뜻으로 짓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거요. 모든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소. 우리가 어떻

구저떻구 뜻으로 짓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만법 가운데에 묘한 작용이 끝도 한도 없소. 생각하고 말

하고, 왔다 갔다, 울었다 웃었다 온갖 작용이 그지없소. 그러나 그 바탕, ‘나’까

지 포함한 모든 법의 성품, 그 법성(法性)은 허공 같아서 나는(生) 일도 없고 작

용하는 일도 없는 거요. 그게 대전제(大前提)요. 개별적인 존재건 개별적인 사

건이건 모든 법은 빈 이름 뿐이지 실체가 없는 거요. 환상(幻想)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