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그 언저리 즈음해서 사람들은 공처럼 둥근

지구가 허공 가운데를 빙빙 돈다고 생각했소. 마음으로 지구가 공 같이 생겼다고

지은 거요. 공은 그렇다 치고 그럼 그 공이 빙빙 돌아다니는 허공은 무엇으로 지

은 거요?　·　·　·　·　·　·　　그것도 역시 마음으로 지은 거요. 이 부분을 깊이

참구해야 하오.

　허공이라고 들으면 백이면 백 사람 다 빈 공간을 생각할 거요. 어쩔 수 없이 그

나마 비슷한 허공이라는 말을 빌려 써서, 허공 같은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

은 빈 것도 아니고 꽉 찬 것도 아니면서 때때로 빈 것도 나투고 꽉 찬 것도 나투오.

흔히 빈 것은 없는 것으로 치고, 꽉 찬 것은 있는 것으로 치지만, 사실은 그 마음

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거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인연만

닿으면 있는 모양도 나투고 없는 모양도 나투는 거요. 결국 전부 마음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있는 모양도 빈 것이고 없는 모양도 빈 것이오. 대개 공부하는 사

람들이 그동안 오로지 있는 것에만 집착을 해오다가 몇 마디 알아듣고는 이제는

‘없는 모양’에 들러붙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전부 다 마음

이 변해서 나타난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오. 꿈속에서 정지되어 있는 모양도 나타

나고, 움직이는 모양도 나타나지 않소? 움직이는 모양뿐만 아니라, 비고 정지되어

있는 모양도 전부 마음이 낸 거라 소리요.

　그렇기 때문에 존재론적인 물질관을 가지고 진여본성(眞如本性)에 대해서 아무

리 정교하고 묘하게 생각을 굴리고 또 그것을 설명한다 해도 그것은 대단히 망령

된 거요. 있고 없는 것이 전부 그렇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오. 무엇이라고 머릿속

으로 살풋 지었다면 그것은 벌써 몇 바퀴 굴러 우리들이 그동안 쌓아온 업식(業識)

의 틀을 통해 뭔가 이러쿵저러쿵 말아내는 거요. 그렇게 하는 게 전부 마음이 변해

서 그리 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