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부처님 말씀을 믿소?

　네.

　무유자성(無有自性)이란 말도 믿소?

　네.

　그럼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된 거요.

　· · · · · ·



　만법이 성품이 없으면 모든 언설은 그 자리에서 끝난 거요. 있고 없는 것, 살

고 죽는 것, 그 모든 이분법적 판단은 사람이 사물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멋대

로 이름 지은 거요.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으면 사물은 있는 거요, 없는 거

요? · · · · · · 이 말에 냉큼 ‘없다’고 말하면 또 한 방망이오. ‘있는가’ ‘없는가’

요령 좋은 ‘맞는 답’을 듣자는 게 아니오. 이 세상 삼라만상은 있다커니 없다

커니 단정지어 유, 무 어느 한쪽에 말뚝 박을 수가 없는 거요. 전체가 참된 하

나뿐이니 그 근본은 ‘있다’도 ‘없다’도 아닌 거요. ‘있다’도 아니고 ‘없다’도 아

니기 때문에 그저 인연 따라 ‘있다’도 비추고 ‘없다’도 비추는 거요. 맑은 거울

이 모든 사물을 아무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내듯 그렇게 말이오. 그게

비춤 없는 비춤이요, 그게 실상(實相)이오. 성인들이 어쩔 수 없어서 무(無)니

공(空)이니 비(非)니 얘기하지만, 그것은 다만 어리석은 중생이 그만큼 ‘있다’

는 데에 말뚝 박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오.

　만법이 성품이 없으면 이 ‘나’라는 놈도 예외가 될 수 없소. 이놈은 제 스스로

보고 듣고 판단하고 취하고 버리고, 그렇게 주체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런

놈이 아니오.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허깨비요(幻化空身), 허깨비. 이것을

확철하게 깨치지 못하면 전혀 가망 없소. 수행의 주체가 ‘나’인 줄 알고 있으

면 영영 천리 밖이오. 만법은 끝끝내 비어서 아무 것도 없고, 없다는 것조차도

없는 거요. 그게 만법의 실상이오. 그러니 거기에 무슨 죽고, 살고가 붙을 데가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