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적조를 ‘고요히 본다’는 뜻으로 알면 전혀 시작부터 잘못 된 거요. 그게 적조가

됐건 뭐가 됐건 ‘고요히 보기 위해서 하는 것’도 역시 하는 거요. 명상을 ‘한다’거

나 참선을 ‘한다’ 거나, 그게 전부 ‘무엇을 위해서’ 하는 유위행 아니오? 무슨 목적

을 갖고 한다 소리요. 마음을 안돈(安頓)시키겠다든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라든가, 전부 무언가를 위해서 하는 조작이고 유위행이오. 고요히 보기가 어렵다

소리는 고요히 봐야겠다고 하는 심보가 이미 마음 밑바닥에 깔려있는 거 아니오?

그렇게 어떤 목적과 원하는 바가 계속 있는 한 적조는 있을 수 없소. 그런 사람들

은 이런 말을 들으면 금세 목적과 원하는 바가 없어야겠다고 또 작심을 할 거요.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서 맴맴 돌고 있는 거요, 선뜻 오만 가지 생각

다 놓고 쉬지 못하고.

　적조에는 ‘나’라는 자취가 없소. ‘나’라는 자취가 없고자 하는 것도 ‘나’요. 그러니

살풋 한눈을 팔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거꾸로 가버리고 마는 참으로 지난하고 삼엄

한 길이요 이 길이. 여기서 ‘나 있다’커니 ‘나 없다’커니 하는 게 전부 의식의 장난이

오. 그런 거로 다시 이거니 저거니 하면서 궁리하고 천착(穿鑿)하면서 생각을 휘젓

고 있다면 적조와는 점점 멀어지는 거요. 그저 문득 쉬시오. 그게 적조가 됐건 해탈,

열반이 됐건 아무리 수승하고 오묘한 생각이라도 머릿속으로 지어냈다 하면 그건

흙탕물을 휘젓는 거요. 아무리 대단한 생각이라도 생각 없는 것보다 못하오.

　들은 게 있고 이해한 것이 있으면 그 마음은 이미 허공 같은 마음이 아니오. 생각

이 없어야 한다고 알면, 그 이후로는 생각이 날 때 마다 “어이쿠, 이래 선 안 되는데”

하며 움찔움찔 하는 게 범부중생이오. 그게 어디 ‘마음이 향하는 바에 도무지 걸림이

없게’ 하는 거요? 그래서 많이 아는 사람은 제가 안 바, 제가 이해한 바 때문에 제가

제 스스로를 옥죄여 점점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