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법과 법이 자체로 성품이 없소. ‘나’라는 법이나 희로애락이라는 법이 본래 자

체로 성품이 없는 거요. 그러니 ‘나’라는 법에 희로애락이라는 법이 달라붙는 법

이 없소. 단지 느낌만으로 그런 거 같다고 느껴질 뿐인 거요. 안으로 ‘나’도 없고

바깥으로 티끌만한 한 법도 없소. 그런데도 여기 안으로는 ‘나’가 분명히 있고 바

깥으로도 온갖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굳게 믿고 그렇게 보기 때문에 ‘나’와 바

깥 경계 사이에 마찰이 늘 끊이질 않소. 그게 마땅할 때는 희(喜)고 마땅치 않을

때는 로(怒)인 거요. 이러한 구조에 대해선 그동안 온갖 예를 들어가며 충분히 드

러내 보이질 않았소? 언제까지 그 일을 계속 해야겠소? 지금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오. 항상 존재의 근본으로 돌아가라 소리요.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소. 모든 것은 그저 ‘내’ 한 생각으로 말미암는

거요. 그러니 생각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는 거요. 지금 면전(面前)에 존재하는

것이 사람이 됐건 사물이 됐건, 혹은 심리현상이 됐건 물리현상이 됐건, 실제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이미 한참 미혹해서 있

지도 않은 ‘나’를 세웠다는 뜻이오. ‘나’를 세우면 그게 사람이었건 사물이었건 자

동적으로 비판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친소(親疎)를 두게 돼 있소. 그럼 영영 그 여

여한 한바탕을 깨달을 분수는 없는 거요.

　만법이 성품이 없으면 우선 빛깔이 눈에 와 닿는 법이 없소. 법과 법이 서로 알

아보지 못하고(不相知), 법과 법이 서로 이르르지 못하오.(不相到) 결국 중생들이

서로 알아보고 서로 옥신각신 하는 것은 전부 환영 같은 거요. 생각만으로 짓는 거

라 소리요. 진실로 안팎으로 티끌만한 한 법도 일어난 조짐조차 없다는 사실을 잊

지 마시오. 이 세상 모든 법은 인연생기(因緣生起)요, 인연에 기대어 난 것은 나도

난 게 아닌 거요.(緣生無生)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다 소리요. 그러면 할 말 다 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