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마음이나 경계나 전부다 의식이 일으키는 허망한 장난이라고 말하면서도, 지금

계속 그 허망한 마음이 허망한 경계에 대해서 묻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소. 마

음도 경계도 전부 허망하면 모든 논쟁과 의문거리가 그 자리에서 빙소와해(氷消瓦

解)돼야 맞소. 전부 허망한 장난에 불과한 건데 다시 그걸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옥

신각신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오? 번듯하게 말은 하면서도 자기가 한 말에 제가

아무 공덕도 입고 있지 못한 거요. 결국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힘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목전에 펼쳐진 삼라만상이 전부 내 마음의 거울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라고 아는

사람은 많은데, 그럼에도 그 그림자하고 계속 다투고 있으니 그렇게 아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이오. 이치나 도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소. 하지만 진정으로

회심(廻心)한 한 사람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소.

　나를 포함한 세상만법이 인연이 있으면 있는 듯하고, 인연이 없으면 없는 듯할

뿐인 거요. 그런데 만법이 성품이 없으니 인연이 어우를 때의 인(因)도, 또 그 인이

어울러서 낸 과(果)도 전부 빈 것 아니겠소? 인연이 어우를 때에 아무것도 어우른

게 없다 소리요. 전부 빈 말만 출렁대는 거요. 지금 어려운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

오. 말의 내용이나 이치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여러분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그 고약한 고정관념이 좀처럼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 거요. 업의 뿌리가 그만큼

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