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여기 현정선원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내’가 ‘나’이기를 그쳐야

하오. 심지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억조차 쓸어버려야 법문을 제대로

들을 가망이 있소. 이 법은 인간이 머리로 헤아릴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그런 법

이오. 그런 법을 계속 그 머리를 굴려 요리조리 따져 알려고 하고, 마침내는 알아

냈다고까지 하니, 참 말세는 말세요. 그렇게 해서 알아냈더니 편안하고 기분이

좋습디까? 누가? · · · · · · 깨달은 ‘나’가 있고, 깨달은 ‘법’이 있으면 아직 천리

밖이오.

　화신불(化身佛)은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라 했소. 그래서 부처님도 ‘내가 법을

설했다고 하는 자는 여래를 비방하는 자’라 하신 거요.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수

도 없는 법을 설하시니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금 이와 같은 교화

문(敎化門)을 베푸신 거요. 그저 묶인 자를 풀어주고, 붙어있는 자를 떼어주는,

시종일관 방편설일 수밖에 없는 말말들에 코가 꿰여 그걸 떠받들어 여기저기 이

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면, 그건 그 본래 뜻을 전혀 가늠조차 못하는 것일뿐더러,

오히려 뽀얗게 먼지만 피우고 있는 격이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새로 배우러 온 게 아니오. 지금까지 이 고깃덩이를 ‘나’

라고 알면서부터 익힌 그 숱한 상식과 알음알이들을 깨끗이 털어내고 비워내기

위해 여기 온 거요. 우려내고 비워내고 마침내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조차도 자

취 없이 깨끗이 쓸어낸 후라야 비로소 그때 본바탕이 드러나는 거요. 그게 불성

(佛性)이오. 절대로 새로운 지식, 묘한 소리를 많이 듣고 많이 알아서 가는 길이

아님을 명심하시오. 오죽하면 아무리 대단하고 오묘한 생각이라도 생각 없음만

못하다고 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