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 다 제 스스로가 그렇다고 해서 그렇고, 그

렇지 않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거요. 그렇고 그렇지 않은 것이 몽땅 제가 지은 한

생각에 매여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제 스스로 그렇다고 지어놓고 제가 거기에

코를 꿰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거요. 처음에는 도화지에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

했는데 그림 솜씨가 좋았는지 그리다 보니 이게 점점 호랑이랑 영락없이 똑같아

져서 나중에는 그걸 보고 제가 놀라 자빠졌다는 우스개가 있소. 지금 여러분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들이 제가 업으로 그린 그림자라는 소리요.

　불자(佛子)라면 최고의 경지로 여기는 해탈, 열반, 성불 등등도 성품을 밝히고

보면 그게 전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미혹한 중생들을 일단 진정시키고 울음

을 그치게 하기 위해 성인들이 시설한 방편의 말들인 거요. 부처님이 하신 팔만

사천 법문 가운데 아무리 오묘하고 이상(理想)중의 이상의 말씀이라도 그게 전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해 낸 거요. 그게 무슨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건 몽땅 인간 두

뇌의 산물이오. 그런 건 실체가 없는 것이라, 고다마 싯달타 보기를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의지함 없고 머무름 없는 성품

자리에 계합한 사람이라 할 수 있소. 행여 이 소리를 위아래도 못 알아보고 막행

막식 하라는 소리로 멋대로 알아듣지 마시오. 겉으로 그런 척을 하며 기행을 일

삼는 무리들이 너무 많소.

　여러분의 마음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이 괴롭고 혼란스러운 것은 어머니 배 밖

에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 꾸역꾸역 긁어모은, 보고 듣고 배워 익힌 그 상식, 알

음알이들 때문에 그렇소. 그럼 이 소리를 듣고 그걸 또 없애려고 안달하겠지만,

그럴 필요 없소. 그저 상관하지 마시오. 상관하지 않고 돌보지 않으면 저절로 사

라지게 돼 있소. 본래 실체가 없던 것이기 때문이오. 그놈들은 없애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끈적하게 따라붙게 돼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