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말로는 환화공신(幻化空身)이라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몸과 입과 뜻(身口意)을

굴리는 게 ‘나’라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절대로 공부의 진전은

있을 수 없소. ‘허깨비 같고 도깨비 같고 빈 놈(幻化空身)’이 어떻게 몸과 입과 뜻

을 굴려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거요. 그러니 몸

과 입과 뜻으로 짓는 모든 일은 꿈속과 같아서 전혀 실답지 않다는 사실을 말로써

가 아니라 참으로 깊이 체달해야 하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과 입과 뜻을 굴려서 어떻게 하면 이 ‘나’를, 보다 안정되

고 쾌락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만 몰두하면서 소위 생업(生業), 살기

위해 업(業)을 짓는 일만 하고 있는 거요 지금. 짓는 일은 다 업(業)이오. 그게 무

엇이었건 간에, 할 것이다, 하고 있다, 해 마쳤다 등등, 뜻으로 지으면 그게 다 업

이오. 하지만 해 마쳤어도, 하고 있는 중에도, 하는 일이란 없소. 모든 것이 인연

으로 말미암을 뿐 작용의 주체가 없기 때문이오.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 다 빈 말에 불과한 거요. · · · · · · 일어나는 게 일어

나지 않는 거요. 생기는 게 생기지 않는 거고. 생멸도 없고 가고 옴도 없소. 처음

과 중간과 끝이라는 것은 중생이 헛것을 보고 뭔가가 계속 흐르고 옮기고 한다고

보기 때문에 생긴 터무니없는 구분이오. 수천만 년 그렇게 속아 살아오다 보니 이

제는 마치 과거, 현재, 미래가 당연히 실제 하는 것처럼, 그런 착각 속에 빠져있는

거요. · · · · · · 무위(無爲)를 알아야 승보(僧寶), 즉 부처님 법을 받아 행하는 불

자(佛子)라 했소. 무위라 함은, 도무지 변하고 옮기는 일 없이 티끌 하나 까딱한

조짐조차 없다 소리요. 불자를 자처하는 여러분은 지금 면전의 모든 일들이 과연

그렇게 보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