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불가(佛家)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글자가 없을 무(無)자요. 그래서 질문자도

또 무(無)자를 들고 나온 모양인데, 그저 곧장 성품을 드러내시오. 유(有)니 무

(無)니, 그런 말과 글에 코 꿰여 마냥 먼지 피우며 사고(思考)의 유희(遊戱)만

하고 있지 말고. 본래 면전에는 아무 일도 없소. 오로지 지각작용에만 의지하는

인간이 어리석게도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을 실제로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그 어간에서 있니 없니, 옳으니 그르니, 옥신각신 하느라 지금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거요. 그 ‘있다’는 집착, 뭔가가 존재한다는 집착을 떼어주기 위해서

‘없다’는 말을 쓰는 것뿐이오.

　인간이 쓰는 법은 전부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초해 세워지기 때문에, ‘있다’를

배제한 ‘없다’, ‘없다’를 배제한 ‘있다’ 식으로 두 말이 서로 상반되게 각자 독립

적으로 세워지는 줄 알고 있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두 말은 서로가 서로

에게 의지하여 세워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소.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다’를 배제하면 당연히 ‘없다’만 남는다고 생각을 하니, 이미 거기서 첫 단추

가 잘못 꿰어진 거요. ‘있다’가 없으면 ‘없다’도 없는 거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있다’는 말도 ‘없다’는 말도 전혀 그 존립의 근거가 없는 거라 소리요. 중생들이

그저 보이고 들리는 것이 다인 줄 알고,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라고 오인하여 ‘있

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 ‘있다’는 치우친 집착을 떼어주기 위해 ‘없다’는 말이

그렇게 경전에 많이 보이는 거요.

　이 세상은 본래 적멸(寂滅)하여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진실이니, ‘없다’는 괜한

말을 들었을 때, ‘있음’만 보내는 게 아니고 그 ‘없음’까지도 마저 보내줄 알아야

제대로 된 수행자라 할 수 있는 거요. ‘없음’도 붙여두지 않고, ‘있음’도 붙여두지

않으면 이미 거기엔 유(有)니 무(無)니 하는 따위의 일체의 말이 붙을 자리가 없

는 거요. 그 정도 돼야 조금은 무심(無心)이라 할 수 있소. 이 말을 듣고, ‘아, 그

렇구나!’ 하면서 무심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면 그 사

람은 전혀 지금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은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