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살면서 아무 고민도 없소? 아무 근심, 걱정, 갈등거리가 없냔 말이오? 그게 다

번뇌요. 단적으로 말해서 사는 이게 다 번뇌 덩어리요. 그럼 누구라도 그 번뇌에

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하겠지요? 벗어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벗어나지면? ·

· · · · · 그게 또 번뇌요. 그렇게 생각 생각마다 자기의 뜻을 부여해서 좋으니 싫

으니, 기쁘니 슬프니 계속 그러고 있는데도, 어머니 배 밖에 나오면서부터 한 게

그것밖엔 없어서 이제는 아예 그게 번뇌인 줄도 모르고 사는 지경에 이른 거요.

　나쁜 것만 번뇌가 아니오. 좋은 것도 다 번뇌요. 뭔가가 좋다는 것은 그와 반대

되는 그 어떤 것은 싫다는 의미 아니요? 싫은 게 없으면 좋은 것도 없는 거요. 계

속 그렇게 눈앞에 뭔가가 싫은 게 있고 좋은 게 있으면 그 사람은 눈에 가리움이

있는 거요. 싫고 좋음뿐만이 아니고, 눈앞에 산하대지가 끊임없이 얼쩡얼쩡 대며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러한 모습들이 전부 그림자 같이

빈 거라 소리를 내내 하고 있는 거요.

　바다가 인연 따라 끊임없이 출렁출렁 대지만 물의 본질 그 자체는 전혀 변하는

게 없지 않소? 결국 본질 자체가 전혀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인연 따라 바다의

겉모양이 천태만상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그건 겉모양만 순간순간 그렇게 보일 뿐,

본질적으론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는 소리요. 지금 바닷물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오. 바로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삼라만상 전체가 온통 그와 같다는 얘기를 하

고 있는 거요. 태어나면서부터 눈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이 다인 줄 알고

살아왔기 때문에, 뭔가 생긴다, 변한다, 사라진다 하면서 겉모양만 좇고 있지만, 그

원바탕은 전혀 변하는 일이 없는 거요. 그 움직임 없는 본래 마음의 거울에 인연 따

라 수없이 많은 것들이 비춰지고 있는 거요. 좋은 그림, 싫은 그림, 괴로운 그림, 즐

거운 그림, 등등. 그 중의 하나가 공부의 갈피를 못 잡겠다고 끙끙대는 그림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