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주재자(主宰者)는 없소. 뭔가 자꾸 조작해서

마땅한 건 취하고 마땅치 않은 건 버리려고 하는데, 그게 뜻대로 안 돼서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묻기도 하고 애쓰는 일련의 과

정을 통해 그렇게 하는 주재자가 없는 거요. 만법이 인연생기요. 그러니 허깨비 같

은 인간이 끼어들어 좌지우지 할 여지가 전혀 없소.

　흔히 놓지 못하니, 쉬지 못하니 하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다는 말이오? 그게 엄청

난 집착인 줄 전혀 모르고 있소. 도무지 ‘나’라고 할 ‘나’도 없고, ‘내’가 몸담아 사는

세상도 없고, 그러니 ‘나’와 세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찰, 갈등, 그게 전부 환

상이오. 이 세상 모든 법은 인연 따라 나오. 인연 따라 난 모든 법은 자체로 성품이

없는 거요. 허깨비 같은 거요. 지금 이 세상이 그렇다는 얘기요.

　뜻대로 아주 잘 풀리는 것 하고, 사사건건 뜻에 거스르는 것 하고, 그게 둘 다 한

집안 살림살이요. 그런 전혀 다른 두 상황이 같다고, 다르지 않다고 아는 것만을 가

지고 그 천양지간처럼 보이는 두 상황이 하나로 원융되어 전혀 갈등도 부딪힘도 없

는 경지가 나타날 것 같소? 전혀 그렇지 않소. 문제는 그거요. 그렇게 아는 것은 그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주어진 것에 불과한 거요. 나머지

는 여러분이 당장 실천으로 옮겨야 하오. 이 법은 중간 과정이 없소. 점진적, 점차적,

하는 따위의 말이 붙을 수가 없소. 꿈에서 깨면 깨는 거고 못 깨면 못 깨는 거요. 유

정, 무정 할 것 없이 그 모든 존재가 그대로 본래 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바로 성

인이오. 꿈에서 깨고 봤더니 모든 보고 듣고 했던, 실체인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전

부 내가 마음으로 지어낸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것으로 끝이오. 환(幻)

인 줄 알면 그게 여의는 거요. 다시 여의기 위한 절차 따윈 필요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