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이 법이 뭐를 천착(穿鑿)하고 궁리해서 알아내는 그런 법이 아니오. 쉽게

얘기해서 아는 게 있으면 범부요. 하물며 불교사상(思想)이니, 원효사상이니

하고 앉았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법문이 설해지고 있는지 조차 전혀 가

늠도 못하고 있는 거요. 사상이 뭐요? 인간의 망상이 엉켜 붙은 게 사상이오.

지금 그러한 지식, 상식, 알음알이, 그게 철학이 됐건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

됐건 그게 전부 다 인간이 그 알량한 머리를 굴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헛

손질 하며 숱하게 그어 놓은 획과 같은 거요. 그러한 것들이 전혀 쓸 데 없는

망상이란 사실을 누누이 얘기하고 있는 거요 지금. 그런데도 이제 와서 무슨

사상이 어떻고 저떻고 늘어놓으려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알아듣겠소?

　경회루에 앉아서 평생 서울로 가는 길을 연구한다더니, 지금 여러분이 꼭

그런 격이오. 지금 앉아있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왜 그렇게 말하는가에 대해 깊이 참구하여 알아차릴 생각은 않고, 계속 밖으

로 남이 구정거려 놓은 경전이나 들추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왔다갔다 하며

먼지만 피우고 있으니, 왜 곧장 문 안으로 성큼 들어오지 못하는 거요? 그리

고는 급기야 서울로 가는 길을 안다는 사람을 만나 그를 따라 나서는 게 대부

분의 불자(佛子)입네 하는 사람들의 현재의 모습이오.

　빛깔과 소리, 겉으로 드러난 모습 보지 마시오. 그것만 보고 쫓아다니는 바

람에 그 삶이 그렇게 한 시도 편할 날 없이 고단한 거요. 물은 출렁출렁할 때

나 잔잔할 때나 다르지 않소. 출렁출렁하거나 잔잔하거나 그 드러난 모습이

어떻건 간에 물 그 자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소리요. 너무 당연한 소리 같

은데 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늘 망각하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만 코

가 닷 자나 빠져서 늘 헐떡이며 쫓아다니는 게 여러분의 모습이오. 물결이 출

렁이거나 잔잔하거나 그건 단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러할 뿐, 비록 그 겉모

양이 움직이고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바다는 일찍이 꼼짝도 한 일이 없

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제 비로소 발심(發心)을 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