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많은 법문을 듣고, 숱한 경전을 뒤지며 말이나 문자 가운데에서 뭔가 구하고

얻으려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하겠다는 얘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소. 인간이

만들어낸 유한한 말이나 문자로 어떻게 무한한 것을 담을 수 있겠소? 다만 무명

중생을 이끌기 위해서 말이나 문자 말고는 소통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이나 문자를 사용하는 것뿐이오. 다시 말해 사용되어지는 모든 말이나

문자는 단지 방편으로 베풀어지는 거라 소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구한 날

말이나 문자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그렇게 천년 만년 매달린다 해도 절대 깨달

을 분수는 없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얘기를 해도 이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

지 않는 데에 있소.

　많이 읽고 많이 들어서 그걸 가지고 요리조리 따지고 궁리하고, 그래서 그 결

과로 마침내 알아내고 깨닫고 하는 그런 법이 아니오, 이 법이. 그런데도 여러

분의 질문은 거의가 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는 무

엇입니까?”, “이러저러 하니 이런 것 아닙니까?” 등등, 전부 무엇의 의미나 상

호 관계, 인과 관계에 대해서 묻고 있질 않소? 관계란 없소. 도대체 무엇이 있

길래 이것과 저것의 관계를 묻는단 말이오? 무엇을 가지고 이것이라고 특정하

고 무엇이 있다고 저것이라 특정 짓는단 말이오?

　여러분이 ‘나’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이 고깃덩어리는 지각(知覺)이 없소.

옳다 그르다, 참이다 허망이다 하며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없단 말이오. 저 논

이나 밭에 양팔 벌리고 서있는 허수아비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거요. 그런 허깨

비가 어떻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소? ‘나’뿐만이 아니오.

이 세상 삼라만상이 몽땅 다른 그 무엇의 인연화합으로 말미암은, 전혀 실체가

없는 꿈같고 그림자 같은 존재인 거요. 지금 당장 보기엔 앉았다 섰다, 왔다 갔

다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실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그것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오. 그냥 그림자요. 환상이란 말이오.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깨달아 마쳐야 할 참 성품은 움직이지 않소. 왔다갔다 하는 일도 없

소. 그 자체는 항상 여여(如如)하게 꼼짝도 안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응현(應現)

해 내오. 지켜야 할 성품이 없기 때문에 짓는 대로 응해서 나투는 거요. 거울은

거울 자체의 정한 성품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내지 않소?

그와 마찬가지인 거요. 그게 여러분의 본래 자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