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이 길은 참으로 올올한 마음으로 삼엄하고 마디게 가는 길이오. 어떤 질문을 할 때

에도 세속에서처럼 그저 모르는 사실 하나 알고 싶어서 툭 던지는 그런 질문이라면

그건 전혀 마음공부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오. 참으로 깊은 고민 끝에 절절하게 나

오는 질문이어야말로 그 공부의 진척이 있을 수 있소. 그러한 진지한 과정을 통해 그

공부의 깊이가 달라지는 거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 지견이나 늘리고 알음알이나 쌓는

일만 반복하는 것이니, 자기는 잘 가고 있다고 굳게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동쪽으로

가야할 사람이 정반대 서쪽으로 가고 있는 거요. 이 말은 한 치도 과장된 말이 아니오.

　그렇고, 그렇지 않은 게 전부 빈 말뿐이라면 하나로 원융되는 것(그렇고)하고 원융

되지 못하는 것(그렇지 않은 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 거요?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

게 되면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 하는 식으로 규정해서 말하게 되는데, 사실은 그 관

찰의 대상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오. 그 관찰대상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만법이 몽땅 인연생기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은 잠

시잠깐 있는 듯 할 뿐이지 실상은 이름도 성품도 뜻도 없는 거요. 그런데 미혹한 중생

의 눈에는 그것들이 전부 실체로 보이기 때문에 대번에 있다 없다가 갈리게 되는 거요.

일단 있다고 보면 거기에 좋다 싫다, 이롭다 해롭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 등등 수도 없

이 많은 갈래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키게 되고, 나중에는 애당초 무엇을 갖고 그랬

는지 알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거요. 전혀 실체가 없는 것에 마냥 휩쓸려 가

는 거요.

　잘 모르겠거든 꿈속을 떠올려 보시오. 꿈속에서도 또렷또렷하게 있는 것과 아무것도

없는 것이 등장하지 않소? 즉 실체 있음과 실체 없음이 전부 꿈속의 일이라 소리요. 그

럼 꿈이라는 것이 몽땅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것이 분명하니, 결국 있다고 지은 것도

마음이 지은 것이고 없다고 지은 것도 마음이 지은 것 아니오? 마음은 한 마음뿐이오.

그렇다면 있다와 없다는 그 근본이 같은 거라 소리요. 진실이 이런데도 당장 드러난 모

양만 보고 ‘있다’라고 집착하면 거기서부터 이미 사단은 벌어진 거요. · · · · · · 그저

마음이 있으면 온갖 근심이 따라붙고, 마음을 거두면 아무런 근심도 붙을 자리가 없는

거요. 그래서 옛 고인들도 한결같이 오직 마음 밝히라 소리를 강조했던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