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출가하려면 마음이 출가해야지 머리 깎고 먹물 옷 입는다고 해서 출가하는 게 아니오.

겉모습은 전혀 상관없소. 그저 그 마음이 초연히 만법 밖으로 벗어나 길흉화복 간에 그

마음이 휘말리지 않을 수 있으면 그게 출가요. 죽 끓듯 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좀 다스려

보고자 머리 깎고 먹물 옷 입고 다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안 보고 안 듣고 주리 틀고

앉았다한들 그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오.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이 잠시 고요해

졌다 한들 그게 얼마나 지속될 것 같소? 그것은 현실도피요.

　끝끝내 성품을 밝혀야 하오. 지금 면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꿈속의 일과 전혀 다르

지 않다는, 부처님의 가장 핵심적인 말씀을 그저 늘 듣는 그렇고 그런 소리쯤으로 흘려듣

고는, 정작 하고 있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그 모든 것을 실재라고 은근히 확신하며 여전히

시비득실(是非得失)의 망집(妄執)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 공부가 진척이 있을 수

있겠소?

　세간이니 출세간이니, 출가니 재가니 하는 등등의 말들이 몽땅 빈이름뿐임을 잊지 마시

오. 나아가 번뇌니 보리니, 해탈이니 속박이니 하는 말들도 전부 잠꼬대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아야 하오. 그런 것들을 향한 그 헐떡증이 아무 일도 없는 가운데 지금 여

러분을 옥죄고 답답하게 만드는 원흉들이오. 만법이 모두 꿈같은 것이라는 부처님 말씀에

는 그 어떤 것도 예외는 없소. 진정한 출가는 답답한 마음을 편하게 하는 따위의, 이 몸과

마음으로 어떤 공덕을 얻기 위해 하는 게 아니오. 오로지 이 세상 삼라만상 그 어떤 것도

끝끝내 비어 티끌만한 단 한 법도 취할 것 없이 몽땅 빈 것이라는 제법실상을 투철하게 깨

닫는 것이 진정한 출가요. 그것을 깨닫는 데에 무슨 겉모양이 중요하겠소? 단 한 생각이오.

지금 앉은 그 자리에서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훌쩍 놓여나야 좋은 솜씨라 할 수 있소. 그

렇다면 지금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것을 방해하는 게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