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대오(大悟) 백번, 소오(小悟) 무수(無數)라고 했소. 앞으로 이 길을 가다보면 그러한

순간이 수도 없이 반복될 거요. 어머니 배 밖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쌓아온, ‘내’가 절대

적으로 옳다고 믿어온 것들이 몽땅 그 근거가 너무 터무니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그 회한과 복받쳐 오르는 심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요. 그저 자신의 그 단

단한 업의 껍질들이 하나씩 둘씩 벗겨지는 과정으로 보시오. 그렇다고 너무 그 감정에

빠져들어 마냥 거기서 둥개지 말고 어서 한 호흡 돌리고 ‘지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

가?’ 하고 얼른 자문하고는 미동도 없는 그 본래의 성품 자리를 어둡히지 말아야 하오.

　혹시 그러한 경험을 통해 뭔가 한 수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그건 한 순간 ‘도루

아미타불’이오. 끝끝내 ‘나’는 없소. 진정한 수행자라면 무엇보다 먼저 ‘나’라고 할만한

‘나’가 본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사무쳐야 하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나는 것이 없고, 따라서 만법은 자체성이 없는 그저 그림자나

메아리 같이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깨달을 ‘나’가 본래 없는 거요. 깨달

을 ‘나’가 없으니 당연히 깨달음의 과보를 받는 놈도 없는 거요.

　지금처럼 다 보고 지금처럼 다 듣되, 실상은 보는 놈도 듣는 놈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저 맑은 거울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무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되 전혀 자

취를 남기지 않듯이, 그렇게 목전의 모든 것을 고요히 비출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소리 소

문 없이 조촐히 공부를 잘 지어가는 사람이오. 내내 그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본래 여여

부동한 참 나가 우뚝 드러나 있음을 알게 될 터이니, 그것은 결코 내가 찾는 것이 아니고,

무심을 얻었을 때 저쪽에서 스스로 찾아오는 것임을 잊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