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매 순간순간이 새로운 것이라 알아듣고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계속 머릿속에 담고 다니

니,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한 말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그 알아들은 내용 때문에 괴롭기까지

하다면 그것은 엎친 데 덮친 격 아니오? 자신의 말과도 맞지 않다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겠

소? 순간순간 늘 새로운 것이라면서 그렇게 알아들은 ‘묵은 기억’을 항상 짊어지고 다니며

과연 그렇게 보이는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하며 자신을 늘 감시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

다면 그건 자신이 금방 한 말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는 거요.

　그것이 불법에 관한 것이 됐건 진리에 관한 것이 됐건 설해지는 모든 말은 물소리, 바람

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소. 그저 인연 따라 일어나는 메아리 소리와 같은 거요. 세상 삼라

만상이 온통 하나요 한 바탕인데 누가, 누구에게, 무엇에 관해 얘기할 수 있겠소? 이렇듯

본래 공적해서 한 마디도 말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세간법을 따라 어쩔

수없이 말하는 것뿐이오. 그러니 그 들은 바 법문을 깊이 수긍해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

고 다닌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는 거요. 반대로 부정하고 배척해도 역시 전부 까닭

없는 짓이오.

　일체 만법이 본래 스스로 청정하고 온전해서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더라도 실상은 전혀 움

직이는 일도, 물들고 이지러지는 일도 없음을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그 많은

경전의 말씀과 법문이 있는 것뿐이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이 그것이 방편의 말인 줄 모르

고 그 말말 가운데에서 묘한 이치를 알아내는 것으로써 불법(佛法) 공부인 줄 알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오. 그것은 마치 동쪽으로 가야 할 사람이 서쪽을 향해 내닫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요. 실생활에서건 도반들과의 관계에서건, 그저 일체의 지견을 다 놓고 지견을 놓

았다는 생각도 놓고, 모든 빛깔과 소리가 전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것임을 참으로 사무

쳐서 그 모두를 그저 무심히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공부를 잘 지어나가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