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는데, 무엇이 안 맞는다 소리요? ‘내 생각’, ‘내 소견’이 그 사람의

그것과 맞지 않는다 소리 아니오?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여러분이 하는 공부는 ‘내 생각’,

‘내 소견’을 쑥 빼버리는 공부를 하고 있는 거요. 이 몸이 환화공신(幻化空身)이란 말은 입

이 닳도록 하면서 그런 환화공신이 어떻게 생각이 있고 소견이 있다는 거요? 이 말은 절대

로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오. 진실이 그러한데도 다만 여러분들이 믿지 않을 뿐이오. 어머

니 배 밖에 나온 이후로 이 몸이 ‘나’고, 그래서 이 ‘나’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 세상을

얼마나 요령 좋게 잘 헤엄쳐 나가는가에만 온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에, 그런 소중한 ‘나’가

환화공신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거요. 하지만 그 준령을

정면으로 돌파해서 그 사실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아, 참으로 이 몸이 꿈같고 허깨비 같고

그림자 같아서 도무지 ‘나’라고 할만한 ‘나’가 없다는 사실이 사무쳐지지 않는 이상 절대로

깨달을 분수는 없소.

　중생의 모든 소견(所見)은 몸과 입과 뜻(身口意)으로 빚어낸 자기 업의 그림자를 보고 있

는 거요. 그러니 이 몸과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일체의 느낌이나 소견 따위는 그것이

몽땅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허망해서 전혀 실답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오. 그래

서 다시는 견문(見聞)의 찌꺼기를 좇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된 마음공부의 요체임을 잊지 마

시오. 결국 마음공부라는 것은 범부의 망령된 소견을 제하는 것일 뿐, 달리 수승한 이치나

재간을 배워 익히는 게 아니오. 그게 누가 됐건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이 지내야

만 하는 상황이 주워졌다면 수행자에게 그 이상 가는 공부거리가 어디 있겠소? 그 상황과

정면으로 부딪혀 이 ‘내’가 다해 마쳐야 하오. 본래 없었던 거요 그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