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놓으시오. 놓고 놓고 또 놓고, 그저 모든 걸 인연에 턱

맡기고 그냥 쉬시오. 이 세상 그 어떤 경우도 고깃덩어리인 이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일은

본래 없소. 불자(佛子)치고 환화공신(幻化空身)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면서도 왜

그렇게 말하는가에 대해서 그 뜻을 깊고 진지하게 돌이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소. 환화공

신이란 말이 무슨 뜻이오? 이 ‘나’란 놈은 허깨비 같이, 꿈 같이, 빈 허공 같이 있다 소리요.

그러한 허깨비가 어떻게 사고의 주체,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겠소? 그런 일은 없소. 연생

(緣生)은 무생(無生)이오. 이 말은 추호의 과장도 없는 부처님 말씀 그대로니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믿기라도 하시오.

　저 바다의 물결이 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저 홀로 출렁출렁 파도치는 거 봤소? 그런

경우는 없지 않소? 바람이 있으면 파도가 일고 바람이 없으면 파도도 잠잠한 것 아니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물결 쳐야할까에 대해 걱정하는 일도 없고 이미 출렁인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후회하며 되새김질 하는 법도 없소. 다만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물결칠 뿐

인 거요. 그렇다고 그 물결들이 인연에 맡겼을 뿐이라든가, 인연에 맡겨야 하겠다든가 하는

따위의 쓸데없는 망상도 피우는 일이 없소. 지금 바다의 물결만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오.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요.

　안으로 견문각지 하는 이 ‘나’도, 밖으로 견문각지의 대상도 몽땅 다 실체가 없는 한 마음

속의 일일 뿐이오. 그러니 마음속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생각을 억누르거나, 회피하거

나 그러지 말고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 두시오. 다만 그 모든 생각이 신령한 한 마음이 인연

에 감응해서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 숱한 일들이 벌

어지고 숱한 것들이 덮쳐 와도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이진 일이 없었던 것과 똑 같은 것이니,

다시 무슨 걱정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