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수행자가 경계해야할 것 중에 전후(前後)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소. ‘예전엔 남이 잘 된

다 소리를 들으면 배도 아프고 그랬는데 법문도 많이 듣고 공부를 오래 하다 보니 이젠 그런

놀부 심보가 없어졌다’ 하는. 물론 범부가 그런 정도의 마음 씀씀이가 되는 것도 그게 보통

일은 아니오. 하지만 여러분이 공부하는 일승법은 지금 열심히 갈고 닦아 훗날 그 공덕으로

어떤 바람직한 경지에 이른다는 그러한 생사법을 말하는 게 아니오. 이 길을 감에 있어 그렇

게 공덕이 있고 없음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건 여전히 모든 행위, 모든 수행의 주체로서의 ‘나’

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리요.

　고인이 이르기를 일찍이 두루함과 치우침이 본래의 자리를 여읜 일이 없다 했으니, 지금

여러분 목전의 모든 이분법적인 차별상이 전부 그와 마찬가지인 거요. 욕심과 욕심 없음, 지

혜로움과 어리석음, 참과 허망 등등 그 모든 대립적인 차별상은 몽땅 다 그 한 바탕위에 각자

가 지은 업 때문에 허망하게 나투어진 환상에 불과한 거요. 그러한 온갖 허망한 차별상을 나

투어낸 그 한 바탕,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본래 마음이니, 그 참 마음은 탐욕이 있어도 탐욕이

없어도, 집착이 있어도 집착이 없어도 전혀 그 두 갈래의 한쪽을 취해 좋다고 머무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거요.

　속인의 모습이건 성인의 모습이건 일체의 경계는 내 마음의 거울에 비친 허망한 그림자라

는 사실을 철저히 사무쳐서 더는 속지 말아야 하오. 이 세상의 모든 차별상(差別相)은 그 모

두가 참된 하나를 벗어나는 게 아닌데, 다만 범부의 망정(妄情)으로 천 가지 만 가지 차별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뿐이오. 따라서 유정 무정 간에 울퉁불퉁한 일체만법이 오직 하나 뿐임

을 깊이 사무친다면 모든 인과(因果)가 동시(同時)요, 따라서 생사(生死)까지도 동시니 결코

앞뒤에 떨어지는 일은 없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