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딱히 ‘이러이러한 것이 불법(佛法)이다’ 하고 추켜들 만한 것이 본래 없는 거요. 그건

달리 말하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불법 아닌 게 없다는 소리와도 같소. 여기서 불법이란

말을 어느 특정 종교에 한정된 의미라고 생각하지 말고, 불법을 진리라는 말과 바꾸어

놔도 좋소. 이러이러한 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그 이외의 것들은 진리가 아니라 소리니,

그런 반쪽짜리를 어떻게 진리라 할 수 있겠소? 그러니 여러분이 하고 있는 마음공부는

단정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결정해(決定解)를 지어 말할 수 있는 게 본

래 있을 수 없는 거요. 간혹 중생의 성숙치 못한 지혜가 곧바로 큰 지혜를 감당하지 못

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결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는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방편의 말씀일 수밖에 없는 거요.

　선지식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행동규범이나 도리,

이치 따위를 일러주는 사람이 아니오. 다만 범부가 병을 앓고 있을 때, 그 병에 대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약 처방을 내려주는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소. 그러니 법

문을 듣는 사람이 그 법문 가운데서 묘한 구절을 찾아내어 그것을 제 지견으로 삼아버

린다면, 병이 낫기는커녕 오히려 병이 더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그것이 경전이었건, 여기서 들은 법문이었건 간에 그 모두가 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

한 한 방편일 뿐, 결코 진실 그 자체는 어떠한 말이나 글로도 담아낼 수가 없는 거요. 여

러분도 이제 들을 만큼 들었고 읽을 만큼 읽지 않았소? 다만 그렇게 보고 듣고 깨닫고

알면서도 그 본 바, 들은 바, 깨달은 바, 안 바를 마음에 붙여두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사

람은 공부를 잘 지어가고 있는 거요. 질질 끌지 말고 늘 말쑥하게 비워낼 줄 알아야 한다

소리요. 이 말을 또 꿀떡 삼켜 말쑥함으로써 옳음을 삼아 허구한 날 말쑥하고자 애 쓴다

면 그 사람은 벌써 철썩 같이 붙여둔 거요. 그저 무엇에도 머물지 마시오. 그것이 부처님

말씀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