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곧은낚시 | 조회 : 1445 |
| Re: 뭘 여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 스님 안녕하신지요. > 잘은 모르지만, 인연이라고들 하는데 책도 인연이 있는지 서점에서 서성거리다가 다른 책이 아니고 자꾸만 스님의 책이 눈에 들어와 '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와 '마음놓고 쉬는 도리'를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현정선원 홈피도 알게 되어 이렇게 스님께 뭘 여쭙고자 합니다. > > 그런데 막상 여쭙고자 하니 뭘 여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 > 답답한 게 있는데, 이런 저런 말변두리는 하도 지겹도록 들었지만 우둔해서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가까이 있고 눈앞에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묻고 있는 그놈이라고 하는데, 또는 허공과 같다고도 하는데, > > 가까이 있긴 한것 같은데, > > 제가 언젠가 한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집에서 아버지와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괴물로 변하더니 칼을 들어 저의 육신을 난도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 속에서 눈을 감았고 제 육신이 칼끝에 난도질 당하는 소리를 그대로 들었습니다. 그리곤 꿈이 깨었는데 꿈 속에서 난도질당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저와 꿈에서 깨어 놀라워 하는 저는 같은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 > 불법에 인연이 많은 것 같군요. 여기 저기서 설법도 많이 들었고, 이런 저런 책들도 많이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서 아는 것은 많은데 그 알아들은 바 내용을 철저히 사무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말이나 문자의 변두리를 겉돌기만 하는 겁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 세상은 몽땅 꿈과 같고 환과 같으니라」 하는 말은 아마도 불자 치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그런데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철저하게 구명하는 사람은 참 만나기 어렵거든요. 경에 이르기를, 「환(幻)인 줄 알면 그것이 여읜 것이니, 따로 방편을 요하지 않느니라」 한 말은 곧장 성품을 밝혀서 성불하길 기하는 납자(衲子)에게 있어선 대단히 중요한 말인데, 대개의 수행자는 이 말을 그저 대수롭잖게 지나쳐 버리고 헛고생만 하니, 참 딱한 일입니다. 생각 좀 해 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꿈이고 환이라면 따로 배워 얻을 것은 뭐겠으며, 털어 버려야 할 번뇌는 뭐겠어요? 그 모든 것이 다 지금 <있는 그대로> 공적해서 없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옛 어른들도 이르기를, 「여환삼매(如幻三昧) 하나만으로 구경(究竟)에 이를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오랜 꿈에서 깨고 보니, 이 몸도 마음도 이 세계도, 나아가서 저 허공까지도 몽땅 꿈속에서 <마음의 변현(變現)으로> 중생의 마음 속에 나타난 <업의 그림자>(業影)일 뿐임이 밝혀졌으니,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밝힌 납자라면, 일시(一時)에 모든 것을 다 놔버리고 쇄쇄낙락(灑灑落落)해도 무방하지 않겠어요? 모든 경론(經論)의 말씀은 한결 같이 그저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봐서 성불하라」 고 한 말로 요약됩니다. 그러니 면전에 전개되는 일체의 현전상(現前相)이 다 꿈이요, 환인 줄 알아서 이에 휘둘리고 끄달리지만 않는다면, 성품은 스스로 밝아질 것이니, 달리 또 딴 도리가 있는 게 아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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