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곧은낚시 조회 : 3993
[Re]: 질문 올립니다.
"仁峰" wrote:
>이 육신은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보고 듣고 다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보고 듣게 하는지요.





 모든 일어나는 일은 이것이 다만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요,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는 게 바로 실상(實相)입니다. 요컨대, 이 세상은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아무 일도

없이 적멸(寂滅)한 건데, ― 그래서 <세간상이 상주한다>(世間相常住)는 게 아니겠어요? ―

그런데 형상(形相)에 미혹한 범부들이 이 <일여한 법계>(一如法界) 가운데서 항상 유전상

(流轉相)을 봄으로써, 이 세상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면서 변천하고 옮겨간다고

여기게 된 겁니다.

 결국 드러난 모양으로 보면 <보는 자>와 <보는 바>가 또렷하나, 이것이 <법성의 도리>

(法性之理)에 비추어보건대, 사실은 <보는 자>도 <보는 바>도 없는, 마치 꿈속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쳐서 헛되이 망정(妄情)에 끄달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 바로 <여래

일대 교화>(如來一代敎化)의 근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컨대, 저 맑은 거울의 <비추는 성품>은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어서, 스스로는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능히 만상(萬象)을 비춰내는 것이니, 제대로 된 수행자라면 결코 음계(陰界)

안에서 주재(主宰)를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거울 속에 비춰진 사람이 어찌 독자적인

지각과 힘이 있어서 능히 주도적으로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어요? 그러므로 마음 속에 능소

(能所)의 자취가 없어야만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는 자>도

<보는 바>도 없이 항상 스스로 환히 알므로 이를 정각(正覺)이라 하는 겁니다. 이에 이르러

만약 납자(衲子)가 <견문(見聞)의 생각>을 짓는다면, 곧 <내가 실제로 봤다> <내가 실제로

들었다>고 여겨서, <본 바>(所見)와 <들은 바>(所聞)의 여러 경험들을 수집(收集)한다면

이는 속절없는 속류(俗流)요, 결코 제대로 된 수행자도 아니고, 구도자(求道者)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형상(形相)을 취함이 없는 앎이여! 반야(般若)의 비춤 없는

비춤이여!> 항상 미묘하게 작용하면서도 언제나 늘 고요하여 자취가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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